새벽 다섯시의 인천은 아직 어둡다.
남자는 뛰지 않았다. 뛰면 눈에 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편의점 불빛을 피해 골목 안쪽으로 걸었고, 지나치는 트럭 소리가 날 때마다 잠깐 멈췄다가 다시 걸었다.
핸드폰은 주머니 속에 있었다. 화면을 켤 때마다 아이가 웃고 있었다. 일곱 살, 눈을 반달로 만들며 웃는 얼굴. 남자는 화면을 보지 않으려고 손가락으로 더듬어서 시간만 확인했다.
5:14.
열두 시간 전, 그는 회사 주차장에서 그들을 처음 봤다.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얼굴들이었다. 반가운 얼굴은 아니었다. 그는 못 본 척 돌아섰고, 그게 실수였는지 아닌지 지금도 모른다. 다만 그 이후로 그들이 계속 같은 방향에 있었다.
아내에게 연락하고 싶었지만 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가 아니었다. 너무 잘 알고 있어서였다.
아들은 오늘도 여덟시에 학교에 갈 것이다.
남자는 그것만 생각하면서 걸었다.
골목이 끝나는 곳에서 남자는 잠깐 멈췄다.
큰길 건너편 버스 정류장에 사람이 하나 서 있었다. 외투 깃을 세운 채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새벽 첫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보였다. 남자는 이십 초쯤 그 자리에서 지켜보다가 골목 반대편으로 돌아 나왔다.
확신은 없었다.
확신이 없어도 가지 않는 편이 나았다.
그는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의심 많은 사람도, 겁이 많은 사람도 아니었다. 회사에서 할 말은 했고, 못마땅한 건 못마땅하다고 했다. 그게 이 나라에서 살아남는 방식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했다. 가난이 대물림되는 건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했고, 이상한 건 이상하다고 말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아내는 가끔 그런 그를 걱정했다.
남자는 그때마다 웃어넘겼다.
동이 트기 시작할 무렵, 그는 아들의 학교가 있는 동네 어귀까지 왔다.
골목 담벼락에 등을 붙이고 숨을 골랐다. 발바닥이 뜨거웠다. 밤새 걸었다. 이 도시에서 저 도시까지, 버스도 지하철도 타지 않고.
핸드폰을 꺼냈다.
아이가 웃고 있었다. 조금 오래 봤다. 지난달에 이가 흔들린다고 했는데. 남자는 그걸 직접 확인하지 못했다.
화면이 꺼졌다.
남자는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그들이 나타난 건 그때였다.
골목 양쪽 끝에서 동시에 들어왔다. 서두르지 않았다. 이미 다 끝난 일처럼 천천히 걸어왔다. 남자는 담벼락에서 등을 떼고 한 걸음 물러섰지만 더 갈 곳이 없었다.
얼굴은 알고 있었다.
회사에서 봤던 얼굴들이었다. 윗사람 눈치를 보며 웃던 얼굴, 아랫사람한테 소리 지르던 얼굴. 그때도 지금도, 표정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저항은 오래가지 않았다. 남자의 팔이 꺾였고, 등이 담벼락에 부딪혔다. 차가운 것이 왼쪽 목에 닿는 느낌이 났다. 이어서 한 번 더.
두 번.
남자는 그 숫자를 알고 있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숫자였다.
그들은 왔던 방향으로 사라졌다.
남자는 천천히 담벼락을 짚고 일어났다. 무릎이 떨렸다. 통증은 없었다. 그게 더 이상했다. 몸이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멀쩡했다.
시간을 확인했다.
6:03.
학교 정문이 보이는 골목 끝까지 걸어갔다. 거기서 멈췄다. 정문은 아직 닫혀 있었다. 두 시간 뒤면 아이들이 들어갈 것이다. 그 아이들 사이에 눈을 반달로 만들며 웃는 아이도 있을 것이다.
남자는 그 자리에서 오래 서 있었다.
주머니에서 구겨진 담배 한 개비를 꺼냈다. 불을 붙이는 손이 떨렸다. 첫 연기를 내뱉을 때, 뭔가가 얼굴을 타고 흘렀다.
남자는 닦지 않았다.
담배 연기가 새벽 공기 속으로 흩어졌다.
남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정문 너머 운동장을 바라봤다. 아무도 없는 운동장이었다. 철봉 옆에 작은 축구공이 하나 놓여 있었다. 누군가 어제 두고 간 것이었다.
아이는 축구를 좋아하지 않았다. 블록 쌓는 걸 좋아했다. 무너지면 처음부터 다시 쌓는 걸, 짜증내지 않고 했다. 남자는 그게 신기했다. 나는 저 나이에 저랬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담배가 절반쯤 탔다.
몸은 여전히 괜찮았다. 그게 이 물질의 방식이었다. 천천히, 조용히. 자는 것처럼. 고통 없이 세포가 무너진다고 했다. 남자는 그 말이 누군가에게는 위로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에게는 아니었다.
아내는 오늘 아침에도 아이 가방을 챙길 것이다.
물통 챙겼어, 알림장 사인했어. 매일 아침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었다. 남자는 그 반복이 때로 지겨웠다. 출근길에 버스 안에서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부끄러운 기억이었다.
지금은 그 아침이 너무 멀었다.
핸드폰을 꺼냈다.
아이가 웃고 있었다. 남자는 전화기를 쥔 채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화면 속 아이가 아빠, 하고 부르면서 뛰어오는 것 같았다. 두 팔을 벌리고, 눈을 반달로 만들면서. 남자는 눈을 한 번 감았다가 떴다.
아이는 웃고 있었다. 움직이지 않았다.
번호를 누르면 목소리가 들릴 것이다. 여보세요, 하는 목소리가. 아직 잠이 덜 깬 목소리가.
그 목소리를 들으면 걸어갈 것 같았다.
걸어가면 안 됐다.
남자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담배를 한 모금 더 빨았다. 연기를 오래 머금었다가 천천히 내뱉었다.
남자는 마지막으로 한 번 운동장을 봤다.
축구공은 여전히 철봉 옆에 있었다. 바람이 조금 불었지만 굴러가지 않았다. 남자는 그 공이 오늘 누군가의 발에 차이길 바랐다. 이유는 없었다. 그냥 그랬다.
담배꽁초를 발바닥으로 눌렀다.
돌아섰다.
학교 정문에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밤새 걸어온 것처럼. 골목이 남자를 받아들였고, 새벽 공기가 뒤를 채웠다.
발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그리고 들리지 않았다.
작가의 말
이 이야기는 오늘 새벽에 꾼 꿈입니다.
잠에서 깬 시간은 새벽 2시 53분이었습니다. 심장을 강하게 쥐어짜는 것 같았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옆을 봤습니다.
아들이 잘 자고 있었습니다.
그 감각을 잊지 않으려고 썼습니다. 저는 소설가가 아닙니다. 그냥 일곱 살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입니다.